260301
오늘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도쿄 마라톤 날이다. 잠은 일곱 시간 정도 푹 잤다. 마라톤도 이제 두 번 경험해봤고, 오늘은 기록보다 ‘즐기며 달린다’는 마음이 커서인지 긴장은 전혀 되지 않았다.
숙소에서 출발지점인 신주쿠까지는 지하철로 20분. 환승 없이 신주쿠선으로 바로 갈 수 있어 편했다. 신주쿠역에 내리자마자 길을 안내해주는 자원봉사자들이 보였다. 그 순간, ‘아 진짜 왔구나’ 싶어 설렘이 밀려왔다.

도쿄 마라톤은 사람마다 입장 게이트가 다르다. 총 다섯 개의 게이트가 있고, 나는 2번 게이트였다. 신주쿠역에서 2번 표지만 따라가면 된다. 입장 전에는 패킷과 팔찌를 확인하고 보안 검사까지 진행한다. 이 과정에도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화장실도 정말 많았다. 줄을 정리해주는 자원봉사자들까지 있어 너무 쾌적했다. 뛰기 전 화장실 한 번 다녀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일본은 확실히 아는 듯하다. 국내 대회에서는 화장실 한 번 가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는데, 벌써부터 월드 메이저 대회의 클래스가 느껴졌다.

정식 출발 시간은 9시. 하지만 워낙 인원이 많아 나는 약 30분 뒤에야 출발선을 밟았다. 도쿄의 빌딩 숲을 달리는 기분이 좋았다. 2km 지점에서 신주쿠 중앙거리를 지나는데, 그 거리를 직접 뛰어간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한국 마라톤은 2~3km만 지나면 병목 구간이 해소되는데, 여기는 참가자가 워낙 많아 끝날 때까지 어느 정도 혼잡이 이어졌다. 물론 추월하려면 할 수 있지만, 좌우로 움직이며 치고 나가야 해서 체력 소모가 더 크다. 주변에 계속 러너들이 있어 3만 9천 명이 함께 달리는 거대한 러닝 크루 같은 느낌이었다.




10시쯤 되니 햇빛이 강해졌다. 다행히 빌딩이 햇볕을 가려줘 그늘에서는 크게 덥지 않았다. 초반에는 존2 심박으로 여유 있게 밀었다. 오늘 신은 신발은 어제 산 슈퍼블라스트3. 초반 10km까지는 노바5와 큰 차이를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거리가 쌓일수록 확실히 달랐다. 바닥에 더 밀착되면서도 쫀쫀하게 밀어주는 느낌. 장거리에서 확실히 편했고, 페이스를 올리고 싶을 때도 반발력이 자연스럽게 따라와 기분 좋게 달릴 수 있었다. 왜 다들 ‘슈블슈블’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카본화를 신었을 때는 완주 후 걷기조차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계속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발이 편했다. 물론 온전히 신발 덕만은 아니겠지만, 차이는 분명했다.
천천히 달리니 약간 지루할 법도 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응원 덕분에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한국 마라톤이 러너와 자원봉사자, 러닝크루 중심의 축제라면 도쿄 마라톤은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훨씬 많아 보였다. 아이와 함께 나온 가족들, 학교 앞을 지날 때마다 응원부와 취주악부의 단체 응원까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도시 전체가 함께하는 축제 같았다.


15km 지점부터는 빵, 바나나, 과자, 사탕 등 다양한 간식이 나왔다. 하나씩 다 먹어봤는데 전부 맛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도쿄바나나. 포장지를 까는 게 조금 번거로웠지만 달콤한 빵이 힘이 됐다. 급수도 훌륭했다. 급수대가 길게 이어져 줄 설 필요가 없었고, 물과 이온음료를 모두 제공해 골라 마실 수 있었다. 국내 대회에서는 물만 주거나 가끔 나오는 이온음료도 제로 제품인 경우가 있었는데, 여기서는 포카리스웨트를 충분히 제공해 염분 걱정이 없었다.


나는 JTBC 서울 마라톤 티셔츠를 입고 뛰었다. 몇몇 한국 러너들이 “화이팅!”이라며 응원해줬다. 3월 1일이라 그런지 곳곳에 보이던 태극기가 유난히 반가웠다. 평소에는 애국심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해외에 나오니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아무리 여유 있게 달렸어도 35km 지점부터는 발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예전처럼 ‘총 맞은 듯’ 멈출 정도는 아니었다. 존3 페이스로 꾸준히 이어갔다. 다리보다도, 이때쯤 해가 높이 떠 그늘이 사라진 게 더 힘들었다.
마지막 2km. 도쿄역으로 향하는 구간 양옆을 가득 채운 응원 인파를 보니 도파민이 폭발했다. 자연스럽게 페이스가 올라갔다. 그리고 골인. 기록은 4시간 10분. 첫 마라톤 때와 비슷하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완주 후에도 여유 있게 기념품을 받고, 짐 찾는 곳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2년 전보다 체력이 많이 늘긴 한 모양이다. 그때는 완주 후 20분은 누워 있었으니까.




끝나고 나눠주는 기념품이 푸짐했다. 메달, 로브, 치즈, 물, 이온음료, 파스, 입욕제, 샴푸, 로션, 바디워시까지. 여러 기업의 후원이 느껴졌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자원봉사자의 수였다. 행사장 입장부터 짐 수령까지, 한국 마라톤에 비해 인원이 압도적으로 많다. 덕분에 동선 통제도 깔끔했고, 참가자들이 오로지 달리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마라톤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아쉬운 점도 있다. 완주 후 짐 찾는 장소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었다. 20분은 걸은 것 같다. 마라톤을 끝내고 지친 몸으로 그 거리를 걷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도 짐을 찾아주던 자원봉사자가 너무 친절해 불만은 금세 사라졌다. 사진을 부탁하니 흔쾌히 찍어주고, 잘 나왔는지까지 확인해줬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자원봉사자들의 친절과 높은 텐션 덕분에 에너지를 많이 받는다.
혼자 대회에 오면 가장 아쉬운 순간은 집으로 돌아갈 때다. 다들 사진 찍고 뒤풀이를 즐기는데, 나는 이 고양감을 안은 채 조용히 숙소로 향한다. 그래도 빨리 씻고 쉬는 것도 나쁘지 않다.
호텔로 돌아가기 전 도쿄역 앞 ASICS 매장에서 러닝화 두 켤레를 샀다. 마라톤을 막 끝낸 러너들이 많아 조금 기다렸지만, 직원들은 친절했고 생일 쿠폰과 면세도 깔끔하게 처리해줬다.
호텔 근처의 코코이찌방야에서 돈가스 카레를 먹었는데 기대 이상보다 맛있었다. 처음 가본 체인이었는데 일본식 카레 생각나면 또 갈거같다.

숙소에서 씻고 잠시 쉬다가, 일본에서 가장 좋아하는 프랜차이즈인 토리키조쿠로 향했다. 야키토리 체인점인데 가성비 좋고, 음식 맛있고, 패드로 간편 주문이 가능해 일본에 올 때마다 한 번씩 찾는다. 예전보다 가격이 조금 오르긴 했지만 메뉴 하나에 390엔이면 여전히 부담 없다. 여기 솥밥은 꼭 시키길 추천한다. 밥을 바로 지어 시간이 조금 걸리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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