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8
251213
트레킹 6일차
틸리초 bc(4,140m) - 마낭(3,540m)
안나푸르나 서킷 코스에서 가장 높은 지점은 토롱라 패스다. 대부분의 트레커들은 이곳을 목표로 하고, 여정 중 사이드 코스로 틸리초 호수에 들른다. 나 역시 토롱라 패스를 염두에 두고 출발했지만, 어제부터 나타난 고산 증상으로 인해 토롱라 패스는 포기하고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전날 다이닝룸에서 만난 네팔 가이드는 네팔인들 대부분이 틸리초 호수까지만 다녀오고 바로 내려간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지금의 선택이 특별히 아쉬운 결정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토롱라 패스를 넘지 않았다고 해서 이 트레킹이 덜 완성된 것 같지도 않았다.
어젯밤부터 기침과 콧물이 멈추지 않았고 약간 어지러워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너무 추웠다. 영하 17도. 전기장판이 없었으면 얼어죽지 않았을까 싶다. 몸 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고산병에 가장 좋은 약은 ‘내려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곳에 더 머물 수는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오늘은 마낭까지 걸어가야 한다. 그래도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든 덕분인지 자다 깨다 했어도 총 8시간은 잤다고 애플워치가 기록해 주었다.

아침으로는 벅위드 브레드를 먹었다. 직역하면 메밀빵인데, 히말라야 지역에선 메밀이 흔해서 자주 먹는다고 한다. 메밀로 만든 빵은 처음이었는데, 맛은 보리빵과 비슷했다. 팬케이크처럼 나와 칼로 잘라 먹었는데 양이 너무 많아 남길 수밖에 없었다.
밥을 먹고 8시 20분쯤 트레킹을 시작했다. 오늘 첫 번째 목표는 마낭까지 가는 것이고, 두 번째 목표는 마낭에서 지프를 타고 베시사하르로 내려가는 것이다. 롯지 사장님 말로는 오후 2시 전에 도착하면 지프를 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지만 확실하진 않다고 했다. 지프를 타려면 더 일찍 출발하는 게 맞았겠지만, 어제 추위에 크게 당해서 오늘은 해가 뜬 뒤에 출발하기로 했다.
이틀 전에 왔던 코스라 풍경을 보는 여유보다는 지프를 탈 수 있을지에 신경 쓰며 빠르게 걸었다. 기침은 계속 나왔지만 컨디션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하산길이라 배낭도 가볍게 느껴졌고, 오늘만 걸으면 트레킹이 끝난다는 생각에 의욕도 넘쳤다. 랜드슬라이드 구간의 그 절벽 같은 길도 올라갈 때는 갈 만했다. 물론 중간에 멈추면 미끄러지기 때문에 한 번에 쉬지 않고 끝까지 올라야 해서 쉽진 않았지만. 예상보다 빨리 중간 마을인 시리가르카에 도착했고, 잠시 목만 축인 뒤 다시 출발했다. 해발고도가 내려갈수록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고, 이 페이스라면 오후 2시 전 마낭 도착도 가능해 보였다.

https://youtube.com/shorts/UzFEyxetDdc?si=Q1yQV-cdm6E4Bl7i
히말라야의 흔한 출렁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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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간에서는 야크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야크는 히말라야 고산 지대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대표적인 가축으로, 운송·식량·연료·의복까지 고산 생활 전반을 책임진다. 소처럼 생겼지만 크기는 말과 비슷해 의외로 귀엽고, 길에서 마주치면 사람이 비켜줄 만큼 성격도 순하다.


https://youtube.com/shorts/izyuAO-POCE?si=c-9TdNaaLNA1mwLG
귀여운 야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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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르에서 야르가르카로 가는 표지판이 보였다. 토롱라 패스로 향하는 길이다. 순간 컨디션이 괜찮아 이쪽으로 가볼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어제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블로그에 글을 올려 놓고 여기서 또 말을 바꾸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거짓말하는 것 같아 단념했다. 만약 어제 일기를 안 썼다면 야르가르카로 갔을지도 모르겠다. 매일 여행기를 쓰다 보니 이런 점은 또 좋다.

13시 20분, 마낭 도착.
지프 주차장에 가봤지만 지프는 없고 픽업트럭 한 대만 서 있었다. 주차장 앞 가게 아주머니에게 베시사하르 가는 지프가 있냐고 물어보니 오늘은 없고 내일 아침에 있다고 한다. 열심히 걸어 내려왔는데 하루를 더 기다려야 한다니.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일 가야지. 어차피 오늘 지프를 탔어도 베시사하르에서 하룻밤은 자야 했을 테니, 결국 포카라로 가는 건 내일이다.
숙소는 예전에 묵었던 곳과 다른 롯지로 잡았다. 틸리초 호텔과 가격은 같은데 방이 더 넓고 화장실에 샤워기도 있어 좋아 보였다. “핫 샤워?” 하고 물으니 된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레버를 돌려도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다. 사장님께 말했더니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해서 이동했는데, 더블베드 룸이라 오히려 더 좋았다. 그런데… 여기도 핫워터는 안 나온다. 미지근한 물도 아니고 거의 쿨 워터. 그래도 삼일 동안 샤워를 못 했던 터라 결국 찬물로 씻었다. 쿨워터로 씻어서 그런가 오후 3시인데도 춥다. 근데 새벽엔 영하 16도까지 떨어진다고 한다. 이제 제발 따뜻한 곳에서 살고 자고 싶다.
저녁 메뉴를 보는데 역시 어디서나 파는 롯지 음식들뿐이다. 그런데 맨 뒤에 신라면이 있었다. 원래 외국에서는 한식, 특히 라면은 잘 안 먹는 편인데, 롯지 음식만 일주일 먹다 보니 완전히 질려버렸다. 칼칼한 국물이 너무 당겨서 무려 650루피짜리 신라면을 주문했다. 계란 포함으로 시켰는데, 국물에 풀린 계란이 아니라 뚝배기 비빔밥에 들어가는 계란지단처럼 나왔다. 여기선 라면에 계란을 풀어 먹는 문화가 없는 모양이다. 물 양이 약간 많긴 했지만 조리 시간은 잘 맞췄는지 면은 딱 좋았다. 국물을 한 입 마시자 오랜만에 고춧가루의 자극적인 맛이 들어오면서 몸에 생기가 도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 보다.

내일은 아마 하루종일 차로 이동만 하겠지만 그래도 저녁쯤엔 맛있는거 먹고 따듯한 곳에서 잘 수 있단 생각하니 설렌다. 이제 우리나라보다 추운 곳으론 여행 안 갈래.
오늘의 지출
• 롯지 정산 : 4,360루피
• 생수 2병 : 100루피
-> 총 4,460루피(약 45,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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