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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네팔

네팔 7일차 틸리초 호수

Day 7
251212
트레킹 5일차
틸리초 bc - 틸리초 호수 - 틸리초 bc

오늘은 틸리초 호수를 가는 날이다. 틸리초 호수는 해발 4,920m,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수다. 숙소인 틸리초 베이스캠프가 4,150m이니 최소 770m를 올라야 한다. 이곳은 오후가 되면 바람이 거세져 트레킹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대부분 새벽에 출발해 점심쯤 내려온다. 토롱라 패스를 넘은 사람들은 시르가르카로 향하고.

이번 코스는 원점회귀라 배낭을 롯지에 두고 가벼운 짐만 들 수 있어 상대적으로 수월하겠거니 했다. 체크아웃이 11시라 처음엔 다이닝룸에 배낭을 맡기려 했는데, 롯지에 묵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천천히 체크아웃하라고 해주셔서 아침에 짐을 싸지 않아도 되어 정말 편했다.

나는 6시에 출발했다. 새벽에 옷 갈아입는 건 늘 고역이다. 차가운 옷이 이불 속에서 간신히 유지한 체온을 순식간에 앗아간다. 이를 악물고 옷을 갈아입었다. 다행인지 객실 안과 밖의 온도 차가 크지 않아 영하 17도였는데도 생각보다 엄청 춥지는 않았다.

해가 뜨지 않아 어두워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걷기 시작했는데, 초반엔 폭이 넓은 무난한 오르막이라 부담 없었다. 높은 지대라 그런지 별이 평소보다 밝고 또렷하게 보였다. 조금 걷자 쌓인 눈이 주변을 은은하게 밝혀 손전등이 필요 없어졌다.

출발 후 30~40분쯤부터 추위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특히 손이 문제였다. 여름용·겨울용 두 장갑을 끼고도 너무 시렸다. 동상 걸릴까 두려워 스틱을 꽉 잡고 손가락에 힘을 준 채 걸었다.

틸리초 호수까지의 길은 계속 오르막이다. 쉬지 않고 걷는 건 불가능해 잠깐씩 눈 감고 심호흡을 했는데, 순간 정신이 툭 끊겼다. 너무 추워서였나 보다. 해는 떴지만 아직 햇빛이 닿지 않는 그늘이었다. ‘위로만 올라가면 따뜻해지겠지’라는 생각에 무작정 올라갔다. 지금 돌아보면 바로 내려갔어야 했다. 뇌도 얼어버렸는지 그런 판단이 전혀 되지 않았다.

고도를 더 올리자 드디어 햇빛이 닿기 시작했다. 햇볕이 몸에 닿으니 서서히 녹아내리듯 따뜻해졌고, 손의 감각도 돌아왔다. 평소엔 뜨거운 햇빛을 싫어했는데 오늘만큼은 구세주였다. 태양을 좀 더 좋아해보도록 해야겠다.

두 시간을 채워도 여전히 오르막뿐이었다. 추위는 가셨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몸이 버거워졌고, 약한 두통이 찾아왔다. 난 그냥 추워서 그러려니 했지만 사실은 고산병이었다. 이때 내려갔어야 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가면 호수 나오겠지’라는 생각과 무아지경이 되어 계속 걸었다. 산소 부족에 뇌가 반쯤 마비된 듯했다.

올라갈수록 점점 마치 외계행성 같아진다.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의 만 행성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우주복 입은 쿠퍼처럼 나도 한 발자국씩 천천히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세 시간이 지나자 길은 눈과 빙판으로 바뀌었다. ‘이제 곧 호수겠지’ 했지만 걸어도 걸어도 풍경은 그대로. 경치는 아름다웠지만 몸은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아이젠을 착용했는데도 빙판에서 두세 번이나 넘어졌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때 처음으로 ‘오늘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토롱라 패스는 포기하고 마낭으로 돌아가 지프로 내려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https://youtube.com/shorts/QdShSzeO-IQ?si=toCsfB4kSWomCe2I

틸리초 호수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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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 20분을 걸어 드디어 틸리초 호수가 나타났다. 눈물은 안 나왔지만 가슴이 턱하고 차올랐다. 원래 3시간 예상했는데, 고산병이 문제였다. 호수는 크고 아름다웠다. 그런데 동시에 ‘왜 이런 데 호수가 있어서 나를 죽이려 드는 거야’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10분 정도 사진 찍고 바로 내려가기로 했다.

위에선 통신이 하나도 안 잡혀용

하산도 순탄치 않았다. 두통은 더 심해졌고, 랜드슬라이드 구간이라 잠시라도 정신이 흐려지면 그대로 끝이었다. 하지만 ‘아직 살아서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마음이 나를 붙잡았다.

마음같아선 이거 타고 내려오고 싶었다

초비상!!! 물이 없었다. 올라올 때 다 마셔버렸고, 내려갈 때는 괜찮겠지 했던 게 오산이었다. 빙판길은 하산이 훨씬 더 힘을 빼먹는다. 몸은 수분을 절실히 원했고, 결국 주변의 눈을 먹었다. 딱딱하게 얼어 먹기 쉽지 않았지만, 이거라도 먹지 않으면 진짜 큰일 날 것 같았다. 오늘 정말 살고 싶었다.

절반쯤 내려가니 빙판길이 사라지고 안정적인 길이 되어 긴장이 조금 풀렸다. 두통도 미세하게 줄었다. ‘살아서 돌아갈 수 있겠다’ 하는 희망이 생겼다. 올라가는 사람들과 마주쳤는데, 이 사람들이 앞으로 마주할 고통을 알까 싶었다.

누군가 버린 PET병을 발견했다. 안에 물이 20ml 정도 남아 있었다.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멀리 베이스캠프가 보이기 시작했다. 살았다. 하지만 아직 30분은 더 걸어야 했다. 이 30분이 너무 길었다.

오후 1시 35분. 롯지에 도착했다. 사장님께 물을 부탁하고, 하루 더 묵겠다고 말했다. 옷도 못 갈아입고 바로 침대에 쓰러졌다. 두통은 여전했지만 누워 있으니 한결 나았다.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고산병 약 먹고 잠깐 자고 일어나니 몸이 꽤 괜찮아져서 밥을 먹었다. 메뉴는 에그 뚝바. 티벳 요리인데 칼국수랑 비슷하다. 이렇게 살아서 이걸 먹고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죽음 가까이에 다녀오니 ‘나는 정말 나약한 존재고,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틸리초 호수를 봤다는 기쁨보다, 지금 살아있다는 사실이 더 감사하다. 그래도 마니차를 열심히 돌린 덕분일까, 안나푸르나는 나를 버리지 않았다.

내 한계는 4,919m였다. 사실 무리해서 그 한계에 맞선 셈이다. 이제 이렇게 높은 산은 오르지 않을 생각이다.

지금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 사랑합니다.
읽어줘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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