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코드 F. WHO의 국제질병분류(ICD)에서 ‘정신 및 행동장애’를 의미하는 알파벳이다. 병원 수납 후 받은 영수증에 F코드가 적혀 있었다. 그렇다. 나는 정신질환 환자다.
내가 일하는 곳인 교도소에도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많다. 나처럼 약을 처방받기 위해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고, 잠깐의 상담 후 처방전을 받아 온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들과 나는 무엇이 다를까. 나 역시 잠재적인 범죄자가 아닐까. 아직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을 뿐, 나 또한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오지 못했고, 그래서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복용 중인 약물 중에 자나팜정이라는 벤조디아제핀계 항불안제가 있다. 이 약을 먹으면 이전보다 불안이 확실히 줄어들고, 부정적인 생각이나 반추에도 덜 사로잡히게 된다. 마치 생각 자체를 희미하게 만들어 버리는 듯한 느낌이다. 때로는 내가 나인지조차 모호하게 느껴지고, 무언가를 하면서도 나중에서야 그 사실을 인식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약을 먹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견디기 수월하다는 점이다.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의 대표적인 부작용은 졸음과 인지기능 저하다. 그래서 복용 후에는 운전을 해서는 안 되고, 만약 운전 중 사고가 발생하면 가중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회사 관사를 담당하는 주임님께 이런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너무도 친절하게 도와주셔서 관사에서 출퇴근할 수 있게 되었다. 주임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하지만 관사 생활도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2인 관사라 누군가와 계속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제천에 있는 집으로 가곤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약물운전을 하는 잠재적 범죄자처럼 느낀다. 물론 약을 먹자마자 운전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복용 전과 비교하면 집중력과 판단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낀다. 마치 머리가 약간 붕 뜬 상태로 운전하는 기분이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아무 일 없이 운전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 약의 용량이 늘어나게 되면 어떻게 될지 걱정된다. 만약 사고가 난다면, 나는 교도소 직원에서 교도소 수용자가 되는 걸까.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러니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삶이, 그리고 일상이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면 어떻게든 버텨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보면 그런 확신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그저 언젠가 찾아올 죽음이라는 구원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을 뿐이다.
회사도 가기 싫고, 병원도 가기 싫고, 어디에도 나가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이 귀찮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감정과 사고가 무뎌진 채 하루를 버티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이 나은 걸까. 아니면 나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기 전에, 아직 나일 때 끝내는 것이 나은 걸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보니, 다시 약 먹을 시간이 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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