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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정

쿠푸왕의 피라미드

올해 3월부터 전쟁기념관 전시실에서 진행 중인 ’쿠푸왕의 피라미드‘ 전시. 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다가 관람료가 3만원이라 망설였는데, 마침 3천원 할인 쿠폰을 뿌리길래 서울 온 김에 바로 예약해버렸다. 우리 집에서 전쟁기념관까지 소요 시간을 검색해보니 버스·지하철 환승으로 약 50분. 그래서 여유 있게 예약 시간 한 시간 전에 출발했다.

원래 계획은 동대문역에서 지하철로 환승하는 거였는데, 버스를 타고 가던 중 마라톤 때문에 동대문역까지 운행하지 않는다는 안내가 나왔다. 그 말을 듣자마자 승객들이 우르르 내리고, 나도 어쩔 수 없이 내려서 청량리역까지 20분 동안 땀날 정도로 빠르게 걸어갔다. 마라톤 대회 덕분에 나도 나만의 마라톤을 하게 된 셈이다. 늘 참가자로만 있다가 이렇게 ‘마라톤 피해자’가 되고 보니, 대회도 적당히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참가자들은 즐겁겠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떠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재빨리 동선을 바꾼 덕분에 예약 시간엔 딱 맞춰 도착했다.

입장 전에는 다른 관람객들과 함께 VR 체험 안내를 들었다. 멀미하는 사람들을 위한 소프트 모드도 있는 걸 보니 관람 대상층이 전 연령대라는 게 느껴졌다. 기기를 착용하는 순간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는데, 내 손조차 보이지 않고, 화면이 잠시 까맣게 전환될 때는 조금 무서울 정도였다.

체험이 시작되면 ‘모나’라는 가이드가 나를 이집트 기자의 쿠푸 피라미드로 안내한다. 피라미드뿐 아니라 주변 도시 풍경까지 생생하게 펼쳐져서 정말 그곳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몸은 전쟁기념관에 있지만 정신은 모나와 함께 이집트에 있었다. 5년 전 VR을 경험했을 때보다 기술이 훨씬 발전했는데, 화면도 더 선명하고 몰입감이 대단했다. 특히 피라미드 꼭대기에서는 진짜 떨어지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피라미드 내부와 외부를 오가는 방식도 마음에 들었고, 설명도 재밌어서 돈이 아깝지 않았다. 앞으로 10년 뒤 기술이 더 발전해 화면이 더 선명해진다면, 굳이 해외여행을 갈 필요가 있을까 싶다. 실제 피라미드에 가면 복잡하고 정신없고, 내부도 마음껏 보기 어렵겠지만 VR 속에서는 재밌는 가이드와 단둘이 한적하게 투어를 할 수 있으니까. 체험을 마치고 기기를 벗으니, 잠깐 진짜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물리적으로 멀리 떠나기 어렵다면, 가상현실로 잠시 여행을 떠나는 것도 꽤 괜찮은 선택인 것 같다. 소설에 몰입하면 정신이 그 세계로 빠져드는 것처럼, VR은 그보다 훨씬 쉽게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준다.

고대 이집트 여행과 최신 VR 기술을 동시에 즐길 수 있었던, 꽤 재밌는 전시였다.

날 고대 이집트로 안내해준 귀여운 가이드

기기를 쓰고 이렇게 돌아다니며 체험한다. 전시가 꽤 오래 진행중이라 일요일인데도 사람이 엄청 많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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