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4
251219
카트만두
자고 있는데 누가 날 깨우는건 오랜만이다. 내리란다. 새벽 4시 30분. 야간버스를 타고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어제 밤 9시부터 중간중간 몇 번 깨긴 했지만, 그래도 도착할 때까지 거의 계속 잤다. 이럴 땐 어디서든 잘 자는 내 체질이 참 고맙다.
버스에서 내리자 타멜까지 오토바이로 200루피에 태워주겠단다. 구글지도로 찍어보니 걸어가면 40분이라 바로 콜했다. 오토바이 뒤에 타는 건 여전히 무섭지만, 재미는 있다. 5분 만에 도착해버려서 오히려 아쉬웠다.
새벽 5시쯤인데도 거리에 사람이 많다. 출근하는 사람들과 광란의 밤을 보낸 사람들이 뒤섞여 있다. 그 덕에 아직 어두운 시간임에도 거리는 묘하게 안전해 보였다.

나는 타멜 더르바르 광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데, 티켓 오피스가 열기 전인 새벽에 들어가면 1000루피를 아낄 수 있다. 그래서 어제부터 이 시간에 오기로 계획해두었다.
더르바르 광장

그저 몇 개의 역사적인 건물이 모여 있는 광장이다. 영어 설명도 거의 없어 이게 어떤 건물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현지인들에게 이 길은 그저 평범한 출근길일 뿐이었다. 돈 내고 들어왔으면 꽤 아까웠을 것 같다. 마치 광화문 광장 들어가는데 입장료를 받는 느낌. 외국인 돈 받을 거면 오디오 가이드라도 만들어주십쇼.
더르바르 광장은 천천히 봐도 20~30분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근처를 더 걸어다녔고, 그러다 새벽 시장이 열리는 곳에 도착했다. 농수산물을 개인이 직접 들고 나와 파는 시장인데 규모가 꽤 컸다. 인상 깊었던 건, 스마트폰을 보며 무게추를 쓰는 전통 저울로 물건을 재던 상인이었다. 이 장면이 지금 네팔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시장을 둘러봐도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 핸드폰 충전이 가능한 카페가 7시에 연다고 해서 그때까지 그냥 걸었다. 다만 카트만두는 매연이 심해 걷기 좋은 도시는 아니다.
히말라얀 자바 커피는 네팔의 ‘스타벅스 포지션’ 프랜차이즈 카페다. 큰 카페의 장점은 눈치 안 보고 오래 앉아 있어도 된다는 것. 그래서 왔다. 보조 배터리를 충전하며 내 체력도 같이 충전하기로 했다. 아침 메뉴로 샥슈카와 수박 민트 에이드를 시켰다. 프랜차이즈답게 엄청난 맛집은 아니지만 무난하다. 수박 민트 에이드는 수박의 초록 부분만 갈아서 체에 걸러낸 맛 같다. 수박바 초록 부분 좋아하면 분명 좋아할 맛. 나는 좋아한다.

집에 가는 비행기는 오후 5시 출발이다. 여기서 2시 반쯤 택시를 타면 되니 아직 5시간이나 남았다. 뭘 하지. 포카라는 호수를 보며 멍 때리기 좋은데, 카트만두엔 그런 공간이 없다. 이럴 땐 그냥 빨리 비행기를 타고 싶어진다.
근데 비행기를 타도 쿤밍에서 9시간 경유다. 집에 가는 길은 아직 한참 남았다. 9시간을 뭘 하면서 버티지.
카페에서 나와 쇼핑을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5,000루피짜리 가방 하나 사려고 두 시간은 돌아다닌 것 같다. 한국에선 10만 원짜리 가방도 큰 고민 없이 사는데, 이런 점이 오프라인 쇼핑의 단점이자 장점인 것 같다.
가방 값이 생각보다 비싸 환전을 하고 다시 가게에 갔는데 맘에 드는 인형이 보여 추가 지출이 생겼다. 그러다보니 택시 탈 돈이 부족해 또 환전을 하게되고 이러다저러다 어느새 밥먹고 공항 근처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 되어 있었다.


네팔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첫날 갔던 커리 가게를 다시 찾았다. 커리는 포카라의 유토피아가 더 나았지만, 난은 확실히 이곳이 더 맛있다. 탄두리 치킨이 오래 걸린다길래 영업 당해 시킨 칠리 치킨도, 매콤해서 꽤 만족스러웠다.
공항 근처에는 파슈파티나트라는 또 하나의 세계문화유산이 있어, 그곳을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들렀다.
파슈파티나트는 네팔 힌두교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 중 하나로, 이곳의 바그마티 강가에서는 공개 화장이 이루어진다.
화장터에 들어서자마자 타는 냄새가 진동한다. 동시에 거의 열 구의 화장이 진행 중이고, 한 구를 태우는 데 3~4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저 불길 안에 시신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자연스럽게 숙연해진다.
주변 사람들 중 일부는 유족으로 보였지만, 유족이 아닌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게 화장을 지켜본다. 화장은 장례 의식 중 가장 힘든 절차다.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에 불이 붙는 순간, 이미 죽었다는 걸 알고 있어도 이제 물리적으로도 완전한 이별임을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가장 격렬한 감정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네팔의 화장터는 달랐다. 분위기는 정숙하지만, 통곡하는 사람보다는 덤덤하게 시신이 타서 한 줌의 재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에게 죽음은 우리와 다른 의미를 갖는 것 같았다. 타인이 자기 가족의 화장을 지켜봐도 별다른 감정이 없어 보인다. 화장하는 곳 건너편 가트에서는 사람들이 구경하듯 서 있고, 그 사이를 물 파는 상인이 계속 오간다. 아, 이것이 네팔의 화장 문화구나 싶었다. 나 역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시신이 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었다. 불에 태우기 전 의식을 보니, 상주로 보이는 사람이 의례를 진행하다 가족과 서로 껴안고 울고 있었다. 어느 문화, 어느 종교를 가졌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슬픈 일이다. 한국의 화장터에서는 유리벽 너머로 간접적으로 보지만, 이곳에서는 시신이 타는 과정을 끝까지 직접 지켜본다. 이들은 3~4시간 동안 그 장면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화장터에서 공항까지는 걸어갔다. 30분 정도라 충분히 걸을 만하다. 카트만두의 트리부반 국제공항은 ‘공항이라고 다 환하고 깨끗할 필요는 없다’는 걸 몸소 보여준다. 동서울터미널과 비슷한 분위기다. 그래도 비행기만 안전하게 뜨면 된다. 청주공항보다는 비행기도 많이 뜨고 규모도 더 큰 것 같다.


나는 인천이나 베이징 같은 거대한 공항보다 이런 공항이 동선이 짧아서 좋다. 무엇보다 다행인 건, 대합실에 전기 콘센트가 있어서 보조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보통의 공항들처럼 게이트가 미리 정해져있지 않고 보딩 몇 분전에 알려줘서 내가 어느 게이트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아마 비행기타려면 무조건 버스타고 가야해서 그런 것 같다. 새벽부터 계속 돌아다녔더니 피곤하다. 비행기 타면 기절하겠구만. 보딩 시작됐다. 이제 진짜 안녕이구나. 바이바이~


네팔 재밌었다. 나는 역시 이런 나라가 잘 맞는다. 이번 여행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건, 일기를 꽤 성실하게 썼다는 점이다. 아마도 일정을 빡빡하게 잡지 않아 여유 시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년엔 어디로 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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