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3
251218
포카라 4일차
원래 계획은 오늘 아침 버스를 타고 카트만두로 이동하는 거였다. 그런데 카트만두보다 포카라가 더 좋았고, 낮 시간을 이동으로 버리는 게 아까워서 야간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 예약은 숙소 사장님께 부탁했다.

오늘은 포카라 마지막 날이라, 그동안 가봤던 식당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들을 다시 가보기로 했다. 아침은 첫날 스무디볼을 먹었던 ‘비건 웨이’. 이번엔 비건 플레이트와 비건 스무디를 주문했다. 네팔에서는 고기가 신선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인지, 고기 요리보다 이런 채식 음식이 훨씬 맛있게 느껴진다.

체크아웃을 하고 월드피스 파고다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예전에 들렀던 카페가 아직 영업 중이길래 다시 들렀다. 그때와 똑같은 메뉴, 망고 마니아가 있어서 반가웠다. 또 망고 마니아 주문. 역시 맛있다. 예전엔 이거 하나 사 먹는 것도 부담됐는데, 지금은 길 가다 군것질하듯 편하게 사 먹게 됐다. 언젠가 다시 포카라에 오게 된다면, 아마 또 여기 와서 망고 마니아를 주문하겠지. 여행지를 재방문하는 재미란 이런 거다.

파고다까지는 두 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가는 길 내내 포켓몬스터 NPC처럼 사람들이 말을 건다. 헬로, 니하오, 나마스테 등등. ‘안녕하세요’는 좀 어렵긴 하지. 네팔은 출산율이 높은지 길에서 노는 아이들이 유난히 많다. 이쪽은 관광객이 잘 안 오는 동네인지, 나를 신기하게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처음엔 나도 반갑게 인사를 해줬지만, 한 어린아이가 돈이나 초콜릿을 달라고 한 뒤로는 마음이 조금 복잡해져서 적당히 손만 흔들게 됐다.

파고다가 보이길래 지도도 보지 않고 그냥 그쪽으로 걷고 있었는데, 한 60대쯤 되어 보이는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내가 가는 길로 가면 한 시간 넘게 더 걸린다며 지름길을 알려주겠단다. 구글 지도로 확인해보니 내가 가던 길이 틀린 건 맞았다. 혼자 가겠다고 하자, 자기도 집이 이쪽이라며 그냥 같이 가는 거라고 했다.
가면서 길에 있는 바나나 나무, 버팔로 같은 걸 하나하나 알려주는데 이때부터 많이 싸했다. 사실 처음부터 경계하고 있긴했다.
스투파에 거의 다 왔을 즈음, 이 사람이 슬슬 본론에 들어갔다. 배가 고프단다. 나도 배고프다고 했다. 어쩌라고. 그러더니 돈을 달라고 한다. 100루피를 요구했는데 마침 없었다. 잔돈은 10루피밖에 없어 10루피를 내밀었더니 받지 않는다. 50루피라도 달라기에 계속 10루피밖에 없다고 우겼다. 3분쯤 실랑이를 하다 결국 그는 10루피도 받지 않고 돌아갔다.
처음부터 “돈 팔로 미”라고 했고, 따라온 건 본인인데 말이다. 헤어지며 바이바이라고 하니 노바이라고 답한다. 혹시 무기를 꺼내면 어쩌나 싶어 물병으로 방어할 생각까지 했다.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었다.
월드피스 파고다는 일본이 지어준 불교 건축물이다. 파고다 자체는 사실 크게 볼 건 없고, 여기서 내려다보는 폐와호수와 포카라 시내 전경이 훨씬 좋다. 걸어 올라올 땐 나 혼자였는데, 막상 파고다에는 사람이 꽤 많았다. 다들 차를 타고 온 모양이다.


파고다 외곽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한 남자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찍어주고 나도 한 장 찍었다. 자기도 혼자 왔다며 말을 걸어왔다. 인도 사람인데 어제 포카라에 도착했고, ABC 트레킹을 할 예정이라 어떠냐고 묻는다. 천천히 가면 할 수 있다고 답해줬다. 더 물어볼 것 같은 분위기라 바이바이하고 도망쳤다.
20분쯤 구경하고 내려오는데, 뒤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그냥 생활 소음이겠거니 했는데 알고 보니 아까 그 인도 친구였다. 못 알아봐서 미안하다고 하니 열 번은 불렀단다. 그렇게 같이 내려가게 됐다.
이름은 데비쉬(Devesh), 24살. 대학을 졸업하고 여행 중이라고 했다. 내가 잘 못 알아듣자 번역기까지 써 가며 열심히 소통하려고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내가 내향적인 사람이냐는 거였다. 외국 사람들 눈에도 내가 그렇게 보이나 보다.
원래는 걸어서 레이크사이드까지 갈 생각이었는데, 이 친구 덕분에 버스를 타고 편하게 이동했다. 언젠가 인도 여행 가면 연락하라며 인스타나 왓츠앱 아이디를 물어본다. 둘 다 안 한다고 하니 그럼 어떻게 연락하냐고 한다. 결국 왓츠앱을 설치해 아이디를 알려줬다.
레이크사이드에 거의 다 왔을 때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는데, 오늘 밤 버스를 타야 해서 뭘 먹으면 멀미 난다고 거짓말을 했다. 데비쉬, 미안. 악의는 아니었어. 그냥 혼자 밥 먹고 싶었을 뿐이야. 그렇게 “내 호텔은 이쪽”이라며 헤어졌다. 미안… 인도 가도 연락 안 할 것 같아. 그래도 네가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니야.
4시에 이른 저녁을 먹으러, 예전에 팝콘을 주던 그 식당에 다시 왔다. 너무 친절해서 부담됐던 그 직원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다른 직원은 적당히 친절해서 오히려 편했다. 치킨 앙가라, 치즈 갈릭 난, 라씨를 주문했다. 탄산을 시키면 또 따라줄까 봐, 애초에 컵에 담겨 나오는 라씨를 골랐다.
치킨 앙가라는 숯불 향이 나는 치킨 커리로, 불맛이 살아 있어 꽤 맛있었다.

거의 다 먹었는데 지난번에 콜라를 따라주던 그 직원이 다시 왔다. 미소 지으며 음식은 괜찮았는지 묻고,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아 있는데 또 따라준다. 나는 이런 상황을 잘 못 견딘다. 조금 더 쉬다 가려 했지만 마음이 불편해져서 오분만 더 있다 나왔다.
내가 사람을 못 믿어서 그런 걸까. 누가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 의심부터 하게 된다. 사실 그 직원은 그냥 자기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일 텐데.


버스 시간까지 한 시간 반 정도 남아서 2차로 한국 콘셉트의 티벳 식당에 들렀다. 버팔로 샐러드, 키마 누들, 맥주를 주문했다. 혼자 다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궁금한 메뉴는 못 참는다.
네팔 맥주 ‘바라싱헤’를 시켰는데, 부드럽기보다는 씁쓸한 스타일이라 내 취향은 아니었다.

키마 누들은 굴소스 볶음 국수 같은 느낌에 인도식 매운 향신료가 더해진 맛이다. 무난해서 대부분 좋아할 듯하다. 이제 버팔로 고기는 못 먹을 것 같아 마지막으로 버팔로 샐러드를 시켰는데, 역시 고기가 질기다. 거기에 오이가 많은 새콤한 무침 스타일이라 개인적으로는 불호였다. 그래도 고기는 다 건져 먹었다.

7시30분에 버스를 탔다. 좌석이 소파라 편하다. 추울줄 알고 미리 따듯하게 입었는데 난방을 켰는지 덥다. 이젠 집에 가는 일만 남았구나. 여행오면 처음엔 두렵다가도 갈때 되면 항상 아쉽다. 이 아쉬움을 채우러 또 여행을 가는 것 같다. 아 디즈니랜드 관람차 못 탔네. 다음 기회에..
오늘의 지출
- 아침 : 850루피
- 점심 : 350루피
- 생수 : 30루피
- 시내버스 2회 : 50루피
- 저녁밥 : 2150루피
총 3,430루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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