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자, 한지민 주연의 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봤다. 초중반까지는 흔한 타임리프물처럼 느껴져 지루했지만, 25살을 연기하는 김혜자의 연기가 좋아서 밥 먹을 때마다 틀어놓았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밥 친구였는데, 오늘 9화부터 결말까지 한꺼번에 보았다. 11화와 12화에서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코코를 보고 운 뒤로 오랜만에 실컷 울었다.
사람은 언젠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다시는 볼 수 없다는 현실과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전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한참을 울었었다. 십팔 년 전 일이지만, 그날 병원 복도에서 울던 기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잊고 싶지 않다.
그렇게 떠나보낸 사람은 이제 온전히 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더 이상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희미해져 간다. 얼굴도, 목소리도, 면도하지 않아 까끌까끌했던 수염의 촉감도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함께 중랑천에서 낚시했던 기억, 어린이대공원 놀이동산에 갔던 기억, 인라인스케이트를 선물 받았던 기억, 가족여행으로 떠난 서해의 작은 섬에서 텐트를 치고 잤던 기억, 까르푸까지 셋이서 뚝방길을 따라 자전거를 탔던 기억, 컴퓨터로 한게임 포커를 했던 기억, 짧은 면회 시간 동안 비닐 너머로 서로 괜찮은 척했던 기억, 바우하우스까지 함께 걸어가며 작은 과일 가게에서 토마토를 샀던 기억 등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 오로지 나를 사랑해 주었던 기억뿐이다.
하지만 분명 더 많은 기억이 있을 텐데,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신체가 죽어갈수록 기억을 담당하는 뇌세포들도 죽어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글로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오십 년이 지나 내가 할아버지가 되어 기억이 희미해져도, 이 글을 읽으며 내가 누군가에게 정말 사랑받았었다는 사실만큼은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문자를 통해 이렇게 글로 기록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나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열심히 기록하자. 기억은 영원하지 않으니까.
여러분들도 최대한 기록해놓으시길 바랍니다. 사진으로든 영상으로든 글로든 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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