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뒤로 내안에서나 내 밖에서나 여러 가지가 완전히 바뀌어버렸어. 시간이 흐르는 방식이 달라졌지. 그리고 네 말처럼, 그 두 가지가 잘 연결되지 않아."
2017년에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었다
초상화 작업으로 어느정도 실력을 인정받고 생계를 유지해나가던 화가 '나'는 낌새를 눈치채지 못한채 아내인 유즈에게 이별통보를 선고받는다. 그리하여 '나'는 초상화 일을 한동안 쉬기로 하고 집에서 나와 홋카이도와 일본 동부 지역을 여행하며 한동안 무언가에 도망치듯 방랑을 한다. 약 1달간의 여행 후 친구 아마다 마사히코의 도움으로 그의 아버지이자 유명한 일본화 화가인 아마다 도모히코의 집에 가서 살게된다. 오다와라의 산 기슭 목조건물에 거주하게 된 주인공은 다락방에서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기묘한 이름의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 그로인해 몇 가지 예사롭지 않은 체험을 하게되는 이야기이다.
2권 합해 12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장편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문체로 인해 지루하단 느낌이 없다. 오히려 짧게 느껴졌다. 문장을 읽는 재미가 좋은 술술 잘 넘어가는 소설이다. 그의 전 작품들보다 이해하기 쉽고 등장인물들도 적어 마음편히 읽을 수있다 .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었다. 1권에서는 앞으로 방대한 사건과 비밀을 예고했지만 2권에서 그것을 이어나갈만큼의 힘이 좀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특히 아마다 도모히코의 멘시키의 뒷 이야기가 그것밖에 되지 않는다는게 의문을 품지 않을수 없었다. 1q84에서 깔끔한 결말을 보여준데에 비해 약간의 용두사미 느낌이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재밌었으니 만족한다. 그리고 일본에서 출판하는 작품으로서 난징사건을 적는데 적지않는 용기가 필요했을텐데 가감없이 소설에 녹여낸 작가에게 작은 경의를 표하고 싶다.
하루키도 이제 나이가 되다보니 이제 장편은 1편에서 2편정도로 끝날것이다. 어쩌면 앞으로는 단편과 에세이집만 낼지도 모른다. 하루키의 매력적인 문체는 긴 이야기를 쉼없이 끝까지 이어나가는 장편소설에 적합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치 선발투수가 꾸역꾸역 이닝을 소화해 나가며 완투를 향해 공을 던지는것과 같이. 기약없는 하루키의 다음 장편작품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