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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2024 jtbc 서울 마라톤 풀코스 후기

전날 밤 10시 30분쯤에 자서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났다. 다시 못 잘거 같아 롤드컵 결승을 봤는데 마침 5경기 시작전 실버 스크랩스가 재생되고 있었다. 마지막 경기 보니까 도파민 급상승해서 다시 자는 건 포기했다. 그래도 전날 8시간정도 자고 오늘 4시간 잤으니 잠은 나름 괜찮게 잤다. 이번 롤드컵 결승은 페이커의 하드캐리쇼였다. 아니 데뷔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어떻게 지금도 여전히 세계에서 제일 잘 할까. 정말 대단하다. 내가 마라톤 준비한거처럼 페이커도 매년 롤드컵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겠지. 일 년동안 노력하는것도 쉽지 않은데 십년가량 최고가 되기위해 계속 노력하고 결국 해내는 그가 다시 한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역시 신상혁.
오전 다섯 시. 엄마가 차려 준 죽이랑 바나나 하나를 먹고 여섯 시가 되기 전 대회장인 상암월드컵경기장으로 출발했다. 엄마가 차 태워줘서 너무 편하게 갔다. 대중교통으로 갔으면 마라톤 하기도 전에 벌써 지쳤을것이다. 가면서 차에서 바나나 하나랑 포도즙 한 포를 먹고 여섯 시 반쯤 대회장에 도착했다.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는 풀코스 달리는 러너들이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다는 게 신기했다. 물품 보관소에 내 짐을 맡기고 화장실 두어번 간 다음 출발시작전까지 풀밭에 앉아 조금 쉬었다. 지금까지 긴장 안 됐는데 막상 진짜 출발한다고 생각하니 좀 떨렸다. 나는 E그룹이라 A~D그룹을 다 보내고 8시 15분쯤에 출발했다. 사람이 많은 마라톤이다보니 초반 병목 현상이 거의 5km까지 이어졌다. 어차피 초반엔 속도를 낼 생각이 없어서 사람들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천천히라고 썻지만 530페이스쯤 된다. 역시 풀코스 러너들답게 다들 좀 뛰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부터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한 덕분일까 몸 상태도 굉장히 좋았고 서울 빌딩숲을 보며 달리니 기분도 상쾌했다. 10키로까지는 정말 힘이 하나도 안 들고 갔다. 병목현상도 많이 해소되어 속력을 낼 수 있을것 같아 좀 달렸더니 20키로까지 510~520페이스로 갔다. 심박도 안정적이고 다리도 잘 움직여줘서 이대로만 가면 서브4는 무조건 하겠다는 생각이 들 찰나 딱 20키로지점이 넘어가면서 다리가 약간 아프고 무겁다는 느낌을 받았다. 벌써 반이나 왔으니 나머지 반도 이대로만 가면 됨!!이라고 혼자 되뇌었지만 25키로 지점부터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LSD로 천천히 조깅하는 것과 540페이스로 장거리 달리는 건 확실히 다르구나라고 내 머리보다 몸이 먼저 느끼고 있었다. 25키로 지점부터는 이 악물고 1키로만 더 가자 이런 생각만 했고 이제 한 번이라도 멈추거나 걸으면 다신 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심박은 괜찮은 상태라 팔치기를 하며 억지로 다리를 앞으로 뻗었고 540페이스를 유지허며 30키로까지 왔다. 앞으로 10키로만, 한 시간만 달리면 끝난다라고 스스로를 격려했지만 30키로부턴 남은 거리가 지독하게 줄어들지 않는다. 이때부턴 허리도 아파 억지로 목을 들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달렸다. 계속 땅만 보고 달리면 허리통증때문에 못 달릴것만 같았다. 다리는 여전히 무거웠다. 20키로지점부터 초코파이와 바나나를 주는데 초코파이 도대체 왜 주는걸까. 한 입 먹었는데 퍽퍽해서 목 막히고 넘길때 가슴이 답답해서 큰일날뻔 했다. 바나나는 괜찮았는데 껍질 까는게 귀찮았다. 다음부터는 다른 사람들처럼 아미노바이탈 4-5개씩 들고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풀코스 마라톤의 사점이라는 35키로까지 왔다. 사점은 사점인게 나도 여기서 털렸다. 도저히 달릴 수 없을 것 같고 지옥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20키로지점부터 무거웠던 다리는 완전 맛이 갔고 약간의 근육경련도 일어났다. 내 돈주고 왜 이런 지옥에 들어왔을까라는 생각과 다신 풀코스 안 뛸거라는 다짐을 했다. 35키로부턴 너무 힘들고 페이스도 7분대로 떨어져 서브4는 포기하고 그냥 완주만 하자고 생각했다. 그래도 걷지 않았다. 계속 뛰었다. 하루키도 자신이 걷지 않고 계속 뛰어서 마라톤 완주한 걸 자랑스럽게 여겼다. 나도 하루키 센세처럼 되고 싶었다. 35키로부터 40키로까진 지옥 그 자체였고 지금도 내가 어떻게 계속 뛰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마 분명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텐데 계속 뛰고있는 러너들과 거의 다 왔다며 응원해주는 시민들 그리고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아니었다면 이 지점을 극복하지 못 했을 것이다. 또 여기까지 왔는데 추하게 걸어서 들어갈 순 없었다. 끝까지 뛰어서 완주하고 싶었다. 40키로 표지판이 보이니 눈물이 나왔다. 지난 몇년 간 운 적이 없는데 40키로 표지판을 보는 순간 울컥하면서 안구에 습기가 찼다. 이런 내가 신기해서 웃었고 덕분인지 힘이 좀 났다. 허벅지에만 있던 근육 경련이 종아리 등 다리 전체로 퍼졌고 발 한가운데 아치 부분이 뜨거워 발을 굴리기 어려웠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부상당하더라도 이대로 뛰어서 끝까지 가고 싶었고 나에게 지금이 영광의 순간이었다. 마지막 1키로. 골인 지점이 보이고 양 옆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응원해준다. 응원을 들으니 힘이 난다. 지금까지 응원은 쓸데없고 흥돋구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지만 응원을 받으면 진짜 힘이 난다. 나를 향한 응원이 아니더라도 ‘힘내, 화이팅’이라는 말을 들으면 뇌가 반응하는가 보다. 그럼 나름 과학적인건가. 어쨋든 마지막 일키로는 정말 응원의 힘으로 끝까지 달렸다. 골인. 기록은 모르겠고 더이상 달리지 않아도 된 것이 너무 좋았다. 제대로 걸을 수 없어 신발을 질질끌고 메달과 간식을 받고 풀밭에 앉았다. 나말고 수 많은 사람들이 풀코스를 완주했고 그들도 나처럼 마라톤의 여운을 느끼고 있었다. 몸은 다 망가졌지만 기분은 너무 좋았다. 해냈다. 걷지 않고 끝까지 달렸다. 문자로 기록이 왔다. 4시간 9분 51초. 서브4를 목표했지만 지금 수준에서 최선을 다 한 결과인 걸 아니 아쉽진 않다. 4시간 10분안에만 들어온 것도 정말 잘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러나 다음엔 무조건 서브4를 할 것이다. 그만큼 더 훈련해야겠지. 지옥구간에서 절대 마라톤 다시 안 할거라고 맹세했는데 완주하고 살만하니 마음이 금방 바뀐다. 풀코스는 일 년에 한 번이 딱 좋은거 같다. 두 번이상하면 건강에 나쁠거 같고 마라톤이 싫어질거 같다. 그러니 우리 내년 10월 춘천마라톤에서 다시 만나자. 더 강해져서 돌아올게. 안녕 나의 첫번째 풀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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