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이겨내고 싶은 분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 이 일기를 씁니다. 제 경험상 우울이라는 이 감정을 거부하고 얘랑 싸우면 절대 못 이깁니다. 우울이 오면 오늘도 또 왔는가 보다 하고 받아들이고 아무것도 안 사는 편의점 단골손님처럼 언젠가 나가겠지라고 생각하면 좀 나은 거 같아요.(이게 정답은 아닙니다. 그냥 제가 하는 마인드컨트롤이에요) 그리고 꼭 병원에 가세요.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이 마음이 아파도 병원에 가야 합니다. 건강보험돼서 비용도 별로 안 나와요.(이주일치 항우울제약 포함 1~2만 원)
2022년 어느 날
오후 두 시. 병가 내고 퇴근 후 영월의료원에 갔다. 정신과 진료받으러 왔다고 접수창구 직원에게 말했지만 정신과 교수님이 퇴직하셔서 진료를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카카오맵에 정신과를 검색해 봤다. 영월엔 없고 제천에 두 군데가 있어 그중 더 커 보이는 곳으로 네비를 찍었다.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았다. 선생님은 내 우울증이 10년가량 넘게 지속되어 온 거 같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부터 쭉 계속 이런 기분과 감정을 갖고 살아온 거 같다. 감정의 흔들림을 물컵에 비유해 주셨는데 나는 컵이 작아 금방 흘러넘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컵의 크기를 늘려주는 약물을 복용해 보자 하셨다. 일단 약하게 처방해 줄 테니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와서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진료실에서 나와 수납하고 약 받고 집으로 돌아와 한 시간가량 잤다. 나는 많이 망가져버렸구나란 걸 느낀 하루였다.
2023년
항우울제를 먹은 지 1년이 지났다. 약을 먹으니 확실히 우울감이 줄어든다. 그렇다고 우울 점수가 0이 되는 게 아니라 평소 60이라면 35에서 30 정도로 낮춰주는 느낌이다. 잠은 여전히 잘 자지 못했고 며칠이상 수면 부족 상태가 이어지면 나를 파괴하고 싶은 기분은 여전했다. 의사 선생님에게 잘 자고 싶다고 말하니 수면 유도제를 처방해 줬다. 유도제 먹으니 초반엔 조금은 잘 잤다. 그러나 항우울제와 달리 이 약은 부작용이 심했다. 잠에 들기 전뿐만 아니라 깨고 나서도 하루종일 몽롱하고 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몸과 정신 둘 다 마비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웠다. 또한 먹는다고 바로 잘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깊게 잠들진 못 했다. 다음 진료 때 수면 유도제는 먹지 않기로 했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셨다. 그전부터 선생님이 유산소 운동을 하라고 하셨는데 어쩌다 런데이라는 앱에 8주간 달리기 훈련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5월 어느 날 저녁부터 시작했다. 프로그램 초반엔 너무 쉬워서 러닝이 우울증에 정말 효과가 있는지 의심했는데 5주 차가 되고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하면서 잠을 이전보다 잘 자게 됐고 우울감도 이전보다 많이 줄어든 게 확실히 느껴졌다. 온전히 런데이 코치의 음성과 내 호흡에만 집중하며 달렸던 이때의 러닝이 정말 재밌었다. 그렇게 8주 프로그램을 마치고 안 쉬고 삼십 분을 달릴 수 있게 됐다. 하프 마라톤도 신청해서 완주를 목표로 훈련하게 됐고 러닝을 내 생활 루틴에 편입시켰다. 잠도 하루에 여섯 시간 이상 자게 됐고 우울감도 여전히 가끔 찾아오긴 했지만 이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그러면서 항우울제 강도도 조금씩 낮추게 됐다. 러닝은 육체적인 건강보다 정신적인 건강에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젠 정말 살기 위해 러닝을 한다. 우울증과 불면증에 고통받으시는 분들 제발 런데이 한 번만 해주세요..
우울증 치료에 러닝이 좋은 약인건 맞지만 이 병은 절대 완치될 수 없다는 걸 우울증 환자들은 모두 알 것이다. 러닝이 너무 익숙해져 자극이 줄어든 탓인가 요즘 다시 우울이 자주 그리고 길게 찾아온다. 그래서 아쉽게도 이 투병 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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