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본

오비히로 4일차 - 오비히로 미술관 등

birdle 2025. 1. 28. 21:39

조식도 너무 맛있었다

아침먹고 객실로 돌아가니 청주공항에 폭설이 내려 한국행 비행기가 지연됐다고 카톡이 왔다. 비행기 지연은 처음이다. 눈 보러 여행 왔는데 오히려 한국에 폭설이 내리다니. 근데 한국가서도 눈 볼 수 있단 생각하니 좋군. 혹시 결항될까봐 오늘 밤 묵을 숙소도 찾아봤는데 아쉽다. 지연으로 인해 여행 시간이 세 시간정도 늘었다. 덕분에 동선 안 맞아서 가기 애매했던 디저트 카페도 가고 천천히 공원도 산책하고 파칭코도 가보고 저녁밥까지 먹었다. 지연 덕분에 오비히로에서 할 수 있는 건 정말 다 즐긴 것 같다. 공항에서 대기하며 언제 출발하나 기다리기만 하는 지연이었으면 짜증났을텐데 이렇게 미리 알려주니 노래방에서 보너스 타임 넣어준 것마냥 좋다. 근데 청주 도착하면 밤 열두시 넘는데 대중교통으로 공항 온 사람들은 집에 어떻게 가지. 우린 차 가져와서 진짜 다행이다.

오비히로 미술관
작은 미술관이지만 전시 공간은 깔끔하고 넓고 의자도 많아 편안하게 작품을 감상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관객이 우리밖에 없어 미술관 전세 낸 기분이었다. 분기마다 전시 작품을 로테이션하는데 이번 기획은 풍경화였다. 거의 대부분이 일본 작가들 작품이지만 램브란트의 작품도 작게 하나 있었다. 서울에서 사람에 치여 그림보러 온 건지 사람보러 온 건지 힘들었던 전시회만 가다가 이런 한적한 미술관에서 나 홀로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풍경화뿐만 아니라 이런 현대 미술 작품도 몇몇 있었다. 난 좋아 이런거

공원에 가니 개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을 몇몇 봤다. 개들은 맨발로 눈 밡고 다니던데 발 안 시렵나? 털이 있어서 괜찮은건가. 홋카이도 개들은 발이 잘 단련돼 있는걸까. 그나저나 눈 때문에 여기선 겨울에 야외 러닝은 절대 못 할 것 같다. 나흘동안 뛰는 사람 한 명도 못 봤다. 눈은 좋지만 겨울내내 못 뛰는건 싫어.

”날 먹어줘“라고 애들이 외치는 것만 같아 먹어줬다. 맛있었어!

파칭코
오비히로 어딜 가나 사람이 적었는데 다 여기 모여있었다. 이 작은 도시에서 할 게 없으니 이 곳으로 몰리는가보다.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았다. 엄마랑 나랑 천엔씩 해서 한 시간동안 놀았다. 시간은 잘 가는데 재밌는지는 모르겠다. 조작할 수 있는건 구슬을 얼마나 강하게 쏠지 결정하는 동그란 레바뿐이다. 그리고 그저 아무 생각없이 여러 연출이 나오는 화면만 멍하니 바라본다. 뭐 되는것처럼 보이고 조금만 더 하면 당첨될거 같아 시간은 잘 간다. 한 시간 돼가니 이걸 왜 계속 하고 있지란 생각이 들면서 그만하고 싶어져 고배율로 이동해 남은 구슬을 순식간에 소모하고 파칭코장에서 나왔다. 더 이상 하다가 바보가 될 것 같았다. 많은 일본인들이 파칭코 기계 앞에 앉아있는데 이 사람들 당첨돼서 구슬이 많이나와도 미동도 없다. 전혀 기뻐보이지 않는다(내가 오해하고 있을수도 있다. 속으론 너무 좋아 죽을지도). 도박을 즐기기 보단 그저 시간 떼우려고 파칭코 기계 앞에 앉아있는 것 같아 보였다. 파칭코 기계에서 나는 요란한 전자음과 그 앞에 무표정으로 앉아서 화면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이 참 대조적으로 보였다. 파칭코 하느니 차라리 경마가 더 활동적이고 재미도 더 있지 않나. 그렇다고 파칭코가 무조건 나쁜건 아니다. 파칭코라도 있어야 이 분들이 집 밖으로 나오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내가 노인이 돼도 저렇게 파칭코 앞 의자에 앉아서 죽음이 찾아오기만을 허송세월 기다리고싶지는 않다고 이 기괴한 장소에서 천 엔과 한 시간의 수업료를 지불하며 느꼈다.


인디안커리
아무리봐도 그냥 진한 일본식 카레인데 가게이름은 왜 인디안커리일까. 그러나 맛은 있었다. 지금까지 먹은 일본식 카레중 가장 진했다. 보통 진하면 짜서 거부감 드는데 여긴 밥이랑 먹기 딱 좋은 간이었다. 돈가스 카레를 가장 매운 5단계로 시켰는데비 불닭 맛있게 먹는 사람들은 5단계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여행끝내고 귀국행 비행기 타러 공항가는 길은 항상 아쉽고 떠나기 싫었는데 이번엔 무덤덤하다. 한국가도 5일이나 더 놀아서 그런건지 여행시간이 갑작스레 늘어서 그런건지 이 곳에서 갈만한 곳은 전부 가봐서 그런건지 아니면 이런 것들이 전부 섞인 감정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보딩타임 기다리는중) 피곤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을뿐이다. 일정 여유롭게 짜서 힐링여행이 될 줄 알았는데 나흘동안 평균 18000보를 걸었다. 오비히로에서 뚜벅이 여행하면서 이렇게 많이 걸은 한국인은 우리밖에 없을듯. 눈 실컷 보고 실컷 밡았다. 그래도 엄마가 재밌어해서 다행이다. 물론 나도 재밌었다. 오비히로, 잘 먹고 잘 즐기고 갑니다~ 에어로케이도 설날에 싸게 비행기표 팔아주고 지연해줘서 고마워~
이제 진짜 피곤하다. 빨리 집에 가서 침대에 눕고 싶다.

애들이 있었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시골 놀이터

뒤에 보이는 설산이 예쁜데 사진으론 잘 안 담기네

공원이 이런데 러닝을 어떻게 해


8시50분 출발이라더만 지금 8시50분인데 아직 보안검사만하고 출국심사는 하지도 않았다. 이럴거면 그냥 내일로 미뤄주지.. 그래도 기다리는 사람들 중 화내는 사람 한 명도 없고 전부 다 침착하게 기다리고 있어서 보기 좋다.
방송 나오는데 청주에서 온 비행기 탑승객들의 입국심사가 늦어 출국 심사도 못 하고 있는거였다. 우리가 마지막 비행기던데 여기 직원들도 우리 때문에 추가 근무 하는거겠지. 나도 피곤한데 직원들은 얼마나 피곤하고 집에 가고 싶을까. 그래도 난 내일 쉬니까 괜찮당.

아홉시 삼십팔분. 이제야 출국심사장 문이 열렸다. 이륙까지 최소 한 시간은 더 걸릴듯. 비행기에서 잠은 잘 잘거 같은데 수면 패턴 꼬이겠네.

아홉시 오십오분. 비행기 탔다! 승무원분들 개피곤할텐데 다들 엄청 친절하시고 짜증난 티가 1도 안 난다. 나였으면 얼굴에 대놓고 티 날텐데 존경스럽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