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무도 모른다

birdle 2025. 1. 25. 11:47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를 봤다. 내가 본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들은 사회고발물의 느낌이 있어 마음 편히 볼 수 없었다. 그러기에 고레에다 영화는 시작 버튼을 누르기전 약간의 결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단 영화가 시작되면 다음엔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끝까지 보게된다. 고레에다 감독만의 독특한 이 연출과 흡입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 ’아무도 모른다‘도 20년이 넘었지만 전혀 낡지않고 고레에다만의 감성과 개성이 있어 보는내내 재밌었다고는 말 못하지만 지루하진 않았다. 그래서 끝까지 보게 된다. 이게 신기하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가족과 책임감에 대해 생각했다. 제천으로 이사 오면서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다. 단순히 귀여워서, 집에 혼자라 심심해서 키우고 싶었던것뿐만아니라 내가 책임질 무언가가 있었으면 하는 욕구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책임진다는건 생각한거보다 훨씬 더 큰 마음을 먹어야한다. 입양한 고양이가 나와 맞든 맞지않든 죽을때까지 같이 살아야하며 아프지 않게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고 밥도 챙겨주고 여러가지 모든걸 내가 책임지고 해야한다. 왜냐면 나라는 존재가 없으면 그 반려묘는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안 키우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회사에 있거나 여행가면 집에 혼자 있을 이 가족이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또한 내가 밖에 있으면 집에 빨리 들어가야할 것 같은 강박감이 생길 것 같았다. 난 강박감 갖는 걸 무척이나 싫어한다. 어쨋든 누군가와 가족이 된다는건 매우 커다란 책임감이 필요한 행위이며 그 커다란 책임을 질 각오를 했어도 실제 가족이 된다면 분명 도망치고 싶을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 무슨일이 있더라도 가족에게선 도망치면 안 된다고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영화를 보는 도중엔 무덤덤했는데 엔딩크레딧에서 눈물이 날뻔했다. 왜 눈물이 날 뻔했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지만 보고 나니 슬픈 영화였다. 정말 슬픈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