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도민체전을 마치고

birdle 2024. 6. 2. 23:19

작년 3월 클라이밍을 시작했다. 시작하고 약 삼개월동안은 체육관에서 내가 제일 못하고 실력도 전혀 늘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홀드를 잡고 벽에 매달렸다. 나만 못하니까 짜증나 오기가 생겨 내가 이기나 너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계속 한 것 같다. 잘하고 싶어서 살 빼려고 러닝을 시작했고 유연성 키우려고 요가랑 필라테스도 했다. 여행갈때만 제외하고 매주 열심히 체육관에 갔다. 등반이 항상 재밌지 않았고 실력이 전혀 늘지 않는 것 같아 클태기도 왔었지만 어차피 집에서 할 것도 없어서 꾸준히 체육관에 갔다. 이렇게 평일에 거의 매일 운동하다보니 어느새 나도 남들만큼 하게 됐고 올해 도민체전에 나가게 되었다. 종목은 스피드. 15미터 벽을 빠르게 등반하는 종목이다. 5월 11일 원주로 볼더링 페스티벌을 가면서 처음으로 스피드 벽에 올라봤다. 그러나 이땐 한 번도 완등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대회때 실격만 당하지 말고 완등만 하는걸 목표로 했었다. 그리고 5월 19일 훈련때 처음으로 스피드 탑을 찍었다. 이때 고양감과 더불어 도전감이 일었다. 더 빨리 할 수 있겠는데? 하면서 몇 번 더 완등을 하니 시간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39초. 5월25일에 했었던 루트 설계안하고 무지성으로 등반했던 때의 기록이다. 이 날 훈련 마무리때 영월클라이밍에 강사로 오시는 선생님께서 중간에 뛰어보라고 하셨다. 여러번 뛰어봤지만 결국 실패하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아까 못했던 점프를 너무 하고 싶었다. 정말 다행히도 이틀 후 다시 원주로 훈련할 기회를 얻게 되어 이때 정말 열심히 했다. 안 되는걸 되게 하는 것. 이게 나를 미치게 했다. 예전 하스스톤 대회 준비했을때의 그 열정감이 다시 불타올랐다. 안되도 계속 뛰었고 첫 점프 성공땐 처음 탑을 찍을때와 비슷할 정도로 정말 기분 좋았다. 그렇게 더 연습해서 점프의 성공확률을 점점 높였고 그렇게 내가 설계한 루트대로 가면 25초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이 날 아침 열시에 도착해서 오후 다섯시 반까지 연습했지만 밤새도록 더 연습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 의지와 열정과는 반대로 몸은 그렇지 않았다. 손등은 다 까지고 팔 근육이 지릿지릿한게 느껴졌다. 아쉬웠지만 집에 가야 했다. 근데 정말 고맙게도 다음 날도 같이 훈련하러 가주시는 분이 계셔서 조퇴하고 또 원주에 갔다. 하루 지나면 팔이 회복될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원주 가면서 오늘 완등 루트를 완벽히 마무리할 생각을 했다. 그러나 몸이 생각보다 더 말을 듣지 않았다. 팔 근육이 전날보다 더 지릿지릿해서 올라가기가 힘들었다. 아직 루트 설계 마치지도 못했고 완등도 한두번 밖에 못해 너무 아쉬웠다. 그래도 이때 다른 친구들 하는거도 보고 내 자세를 동영상으로 계속 돌려보면서 어떤 자세였을때 내가 더 자연스럽고 수월하게 올라가는 지 스스로 많이 연구했다. 특히 이 날 컨디션 나쁠 때 완등했던 경험이 실전에서 정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수, 목, 금. 스피드 연습 너무 하고 싶었지만 원주에선 할 수도 없고 회복도 중요하기 때문에 평소 하는 러닝, 클라이밍, 필라테스 아무것도 하지않고 정말 말 그대로 풀휴식을 취했다. 쉬면서 내가 잘 올라간 동영상을 백번 이상 보면서 방에서 혼자 따라했다. 스피드 연습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토요일이 너무 기대됐고 어제가 그 토요일이었다. 근데 막상 토요일에 해보니 초반엔 잘 되지 않았다. 오히려 실력이 더 퇴화한것만 같았다. 약간 침울해졌지만 그래도 지난 삼일간 내가 짯던 루트를 한 번이라도 성공해보자라는 심정으로 다시 올라갔고 세 번 완등해 목표했던 25초를 찍었다. 할수록 몸이 풀려서 나중에 더 잘된 것 같다.
6월 2일 일요일 오늘. 드디어 대회날이다. 어제 밤 중간에 깨서 한 시간정도 뒤척였지만 대충 여섯시간정도 잤으니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알람 맞춰놓았던 시간보다 삼십분 더 일찍 깨서 깬 김에 아침밥을 먹었다. 메뉴는 알리오올리오. 간단하고 속에 부담도 없고 탄수화물이라 에너지도 날 것 같아 메뉴로 택했다. 평소처럼 대충 만들었는데 오늘의 알리오올리오는 지금까지 만든 알리오올리오중에 최고로 맛있었다. 잠도 괜찮게 자고 밥도 맛있게 먹어서 아침에 기분이 좋았다. 가면서 오늘이 원주가는 마지막 날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대회장에 도착해서 다른 사람들 리드하는거 구경하고 원주에서 새로 사귄 어린 친구와 놀다 12시에 스피드 벽 앞으로 모이라 해서 갔다. 대회 진행이나 실격 사항 등 이런저런 설명을 들은 후 스피드 연습을 진행했다. 연습은 a루트 , b루트 각각 한 번. 아 근데 오늘 날씨가 너무 싫었다. 어제는 구름이 해를 많이 가려줬는데 오늘은 해가 너무 자기주장을 강렬하게 하고 있었다. 햇빛이 나한테만 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부담되고 너무 눈부셨다. 연습 결과는 처참했다. 둘 다 완등할 생각으로 갔는데 한 번도 완등하지 못했다. 어제보다 컨디션도 괜찮았는데 몸이 안풀려서 그런가 햇빛이 짜증나서 그런가 몸 안에 도는 힘이 부족한게 느껴졌다. 이때부터 무섭고 긴장됐다. 실전에서도 못하면 어떡하지. 아 햇빛은 왜 더 쌔지는 거야. 응원소리 왜케 큰거야. 응원소리 물론 고맙고 그럴 의도는 전혀 절대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너무 시끄럽고 억텐이라 부담되고 많이 거슬렸다. 긴장을 풀기 위해 심호흡도 하고 물도 조금씩 마셨다. 이제 진짜 실전이다라는 생각을 하니 지금까지 연습했던 것들을 같이 훈련 도와줬던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내 이름이 호명됐다. 야구선수가 타석에 들어서기 전 루틴이 있는거처럼 나도 스피드 하기 전 루틴이 있다. 먼저 발판 위치를 조정한다. 초크(저번 주 훈련때부터 계속 썻던 부드러운 거)를 골고루 충분히 바른 후 클립을 걸고 바닥을 보며 심호흡을 세 번 한다. 그리고 준비자세를 취한다. 익숙한 차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준비!” 그리고 출발 신호음이 시작된다. “삐 삐 삑!” 그렇게 나의 대회 첫 등반이 시작됐다. 발 밟는게 평소보다 부드럽지 않았지만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팔을 뻗었다. 지금까지 수없이 연습했던 두 번의 점프도 다 성공했고 성공적으로 탑을 찍었다. 기록은 28초466. 목표로 했던 25초보다 느렸지만 그래도 끝까지 실수없이 갔다는 거에 만족해서 내려올때 너무 기분 좋았다. 잠시 쉰 후 두 번째 등반을 하게 된다. 이번엔 진짜 연습대로 부드럽게 가서 25초 하자라는 생각이었지만 시작하자마자 떨어졌다. 아쉽지만 어쩌겠어. 그래도 지금까지 최선을 다했고 덕분에 28초라도 찍었잖니. 근데 어떻게 3등하게 되어 시상식 단상에 올라가게 됐다. 그래서 어제부터 줄곧 생각하고 바랬던 3등 메달 달고 차선생님과 투샷찍기를 성공하게 됐다. 항상 너무 감사했는데 오늘 이 마음을 조금이나마 전해드릴 수 있어 너무 기뻣다. 군끼리 대결이라 농어촌 전형이지만 그래도!! 2024년 강원도민체전 클라이밍 스피드 부문 3등을 달성했다. 지난 1년3개월 그리고 미친듯이 훈련했던 지난 2주간이 헛되지 않았고 나에게도 가끔 좋은 일이 찾아오는구나란걸 느낀 오늘 하루였다. 오늘 응원해준 클라이밍 동료들 그리고 특히 같이 훈련 함께해준 분들에게 너무너무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데 뭔가 부끄러워서 못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