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안동마라톤 하프코스를 마치고

birdle 2023. 9. 17. 19:30

6시 45분에 알람 설정했는데 6시 30분에 일어났다. 5시간정도 잤으니 나쁘지 않다. 아침으로 어메이징 오트와 위트빅스 2개, 바나나 하나를 먹었다. 물도 많이 마셨다. 러닝복을 입고 갈아입을 옷도 챙겼다. 7시 조금 넘은 시간에 출발해 9시즈음 안동시민체육관에 도착했다. 옷과 신발에 각각 배번표와 기록띠를 달았다. 물품 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스트레칭 하고 그늘에서 쉬면서 시간을 보냈다. 풀 코스는 10시에 출발하고 내가 뛸 하프 코스는 10분 뒤 출발했다. 출발 2분 전 화장실에 갔다왔다. 단체로 출발 카운트 다운을 세니 고양감이 일었다. 오늘 잘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2km
오로지 러너들이 러닝화를 지면에 박차는 소리만 들린다. 마치 종이에 펜 쓰는 소리만 들리는 독서실 같아 마음이 편안했다.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4km
의외로 빠르게 4km까지 왔다. 2:15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간다. 이대로 계속 간다면 2:10분대로 들어올지도? 생각할 쯤에 따가운 햇빛이 내리쬔다. 오늘 모자 쓰길 잘 했다.

6km
첫번째 언덕구간. 계속 올라간다. 뛰어도 뛰어도 계속 오르막길이다. 아랫배가 약간 아프다. 어제 너무 많이 먹었나. 땀에 절은 모자가 계속 신경쓰인다.

8km
걷지않고 끝까지 뛰고싶었지만 안동의 언덕을 이길 수 없었다. 별마로 천문대 가는 길과 비슷한 경사와 풍경이다. 거기다 정수리에 직각으로 내리쬐는 햇빛까지 더해지니 버틸 수 없었다. 결국 걸었다. 그렇게 페이스 메이커를 놓쳤다.

10km
반환점까지 또 언덕이다. 포기하고 싶었다. 기록은 포기하고 완주만 하기로 마음 먹었다. 언덕에서 뛰면 체력이 버텨주지 못할것 같아 앞으로 언덕에선 걷고 평지에선 뛰기로 작전을 조정했다.

12km
급수대에서 바나나 한 조각을 먹었다. 너무 달았다. 당분이 몸 전체에 퍼지는 느낌이 좋았고 그 힘으로 2km 더 달릴 수 있었다.

14km
코스의 2/3가 지났지만 아직도 7km나 남았다. 햇빛은 더욱 강렬해지고 기온은 올라갔다. 샤워하고 싶다. 시원한 물 마시고 싶다. 허리 아프다. 눕고 싶다. 나는 왜 달리고 있는걸까. 왜 스스로 고문하고 있는걸까.

15.5km
러너스하이가 왔다. 자연스레 페이스가 올라갔다. 그렇게 1km를 더 뛰었다. 이제 안동 시내가 보인다.

17km
나에게 17km 이후는 미지의 구간이다. 경험하지 못한 구간이지만 고작 4km만 더 뛰면 된다고 생각했다. 자만했다. 이때부터 다리가 말을 듣지 않고 호흡도 거칠어졌다. 실제 마라톤은 평소 뛰는 것보다 훨씬 힘들구나라고 이때 절실히 느꼈다. 나를 추월해가는 사람들을 보며 난 아직 멀었구나라고 생각했다. 겸손해져야겠다.

19km
빨리 걷기와 비슷한 속도로 뛴다. 정신도 몽롱하다. 지금부턴 나와의 싸움이드. 정신력으로 고장난 몸을 움직이게 한다. 손에 힘을 꽉 주고 악을 쓰며 뛰었다. 자원봉사자 학생들이 힘내세요라고 외쳐준다. 힘내라고 하는데 멋없게 걸을 수 없다. 그들의 응원이 정말 정말 힘이 됐다.

20km
마지막 1km 남았다. 허리는 꺾이고 숨은 거칠고 내 다리가 아닌것 같다. 거기에 햇빛은 여전히 강하게 내리쬐고 있고 기온도 많이 올라갔다. 그래도 끝까지 뛰고 싶었다. 이대로 정신을 잃더라도 걸어서 골인하긴 싫었다. 느리더라도 계속 뛰었다. 출발했던 안동시민체육관이 보인다. 다 왔다며 자원봉사자들이 격려해준다. 그렇게 안동시민체육관으로 들어와 골인했다. 골인할때 자원봉사자 학생들이 박수를 쳐줬다. 내가 오히려 그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급수대에서 물을 따라주고 교통 통제하고 응원까지 해준 그들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것이다. 그러나 도저히 서 있을 수 없었다. 근처 난간을 잡고 허리를 숙여 다리와 호흡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이제 더이상 뛰지 않아도 된다. 500ml 생수 두 개를 연달아 마시고 바닥에 앉아 한참을 쉬었다. 다리에 약간의 경련이 일었다. 고작 21km 달리기도 이렇게 힘든데 여기서 21km를 더 달리는 풀마라톤은 어떻게 뛰는걸까. 회복하고 나니 성취감이 몰려왔다. 뛸 때는 지옥같았는데. 이 감정을 맛보기위해 사람들은 마라톤을 뛰는구나.

중간에 걸어서 아쉽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달려서 골인한 내가 자랑스럽다.